가성비에 매몰된 삶. 0
안녕하세요.
자취 15년차.
서른이 넘은 시점에 주판알을 이리저리 튕기다보니.. 인생에 예기치 않은 가욋돈이 제발로 굴러들어오지 않는 이상
월급을 모아 투자와 확률에 기댄 현실 게임에서, 제가 벌 수 있는 총 금액이 대충은 예상되더군요.
비록 알 수 없는 인생이라지만, 혹시 모를 결혼에 자녀에 병환에 부모님과 제 노후까지..
파워 J인 감각으로 최소한의 대비를 해두려는 성향에 맞게 쭉 정리를 하고난 뒤
제게 주어진 건 '가성비'의 삶이었습니다.
할인 품목이어야 장바구니에 담고, 쌓아둘 수 있는 공산품은 죄다 대용량에, 클리앙의 알구게를 염탐하며
대형마트 마감할인을 늘상 노리는 하이에나가 되었지요. 하다못해 원플원 투플원에만 손이 가는.
옷은 이월상품, 전자기기는 최신 최대 용량보다는 중고나 중급기에 활용도가 높은 것 위주로.. 그마저도 잘 사지 않습니다.
배달음식도 효율이 떨어지니 줄입니다. 냉동식품이나 재료들을 두고 가능한 해먹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어떤 단품을 정가에 사본 기억이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집도, 자동차도 기준을 맞추려는 삶.
합리적 소비라 여기며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구하면 그걸로 만족해왔어요.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사회생활을 위한 금액을 씁니다.
물론 그마저도 계획된 범위에 있는 소비일 뿐. 넘치면 다음달이 좀 고달파요.
스스로에 대한 인색함이 당장 못견디게 힘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변과의 비교로 힘들어하기보단 그저 현실에 잘 안주하는 것 같아요.
다만 언제부터였을까요.. 조금씩 마음이 삐걱삐걱합니다.
충분한 비용이나 많은 경험에서 오는 가치가 분명 있을텐데 말이에요.
만족하면 됐지라며 위안을 삼던 시간이 길었던 것인지.. 요즘은 가끔 버겁다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보통의 소비에 가성비를 더하는 것이 아닌, 삶의 모든 소비가 가성비에 매몰되어 가는 기분이에요.
누군가에겐 이것도 많이 쓰고 사는 것처럼 보이려나요ㅎㅎ
더 벌면 여유가 생길텐테 싶다가도, 이게 최선이지 마음먹으며 또다시 스스로를 가두고 삶을 다잡아봅니다.
...나약하기 그지 없네요:)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좋은 화요일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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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잠깐 일 보고 왔더니 댓글을 이만큼이나..!!
공감, 위로, 동기부여, 팩폭(?) 등등 하나하나 읽어보며 웃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푹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