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지어진 아파트가 튼튼한지 알아봅시다 (시대별 아파트 변천사) 0
가끔 언제 지어진 아파트가 튼튼한지 묻는 글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전문적인 답변도 있지만, 황당한 답변도 있고, 잘못된 정보들도 있어서 언제 한 번 제대로 정리를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방대하다 보니까 정리가 잘 안되었는데, 관련 건축 서적들과 관련 논문들, 그리고 현대건설에 재직 당시에 경험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정리를 좀 해봤습니다.
1. 아파트의 시작
1932년부터 지어진 아파트들이 존재했고, 1953년 미군 벤플리프 장군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한미재단(KAF)'이 한국 주택 보급의 롤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종로구 교복동에 지은 행촌아파트 단지도 있긴 했지만, 실제로는 1962년 최초로 단지 형태로 지어진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구조의 6층 짜리 마포아파트를 국내 아파트 건축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라멘구조는 기둥과 보를 철근콘크리트로 하고 벽을 벽돌로 마감하는 식의 구조입니다)
2. 본격적인 아파트의 개발
마포아파트 이후부터 아파트의 시공능력들이 조금씩 올라갑니다. 1967년 힐탑외인아파트는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10층의 고층 아파트였으며 설계 안병의,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습니다.
국내에는 건축자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아 일본으로 부터 자재를 차관으로 들여와서 시공을 하게 되는데, 시멘트, 모래, 자갈을 제외한 다른 모든 건축자재는 다 수입해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도 철근콘크리트 라멘구조에 콘크리트 + 벽돌쌓기 그리고 내벽은 벽돌, 블럭+시멘트 몰탈의 구조로 시공이 됩니다.
이후부터 다양한 건축 기술들을 시도하게 되는데, 1971년에 P.C 공법(프리캐스트- 콘크리트를 먼저 만들어 놓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시험하기 위해 경기도 철산에 한국 최초의 200세대의 PC 중층 아파트를 착공을 합니다. 71년 10월에 착공해서 72년 5월에 준공을 합니다. 동절기 공사 중단 기간 빼고 실제 소요 기간은 4개월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연달아 570세대의 아파트를 PC라멘조로 짓게 됩니다. 외벽과 내벽, 바닥을 공장에서 만들어온 두께 300mm, 250mm 짜리 콘크리트 판을 이용해 지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3. 민간 주도 아파트 건설 붐 시작 (1970년대 중 후반~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위태로워 지면서 노동자들의 소요를 줄이기 위해 시장에 돈을 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을 제정해서 민간이 주도해서 아파트를 계획, 건설, 분양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다 보니 고 인플레이션 상황 이었던 1970년대에 아파트는 아주 좋은 투자 대상이 되었고 투기의 붐이 일게 되면서 민간분양 아파트가 대박을 치게 됩니다. 토지 가격, 주택 가격등이 급 상승하게 되었고 1977년 서울 지역 아파트 분양 경쟁률이 최고 70대1 까지 올라간 곳도 있었습니다. 건설기술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습니다. 해외건설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면서 해외의 최신 공법들을 배워 오게 되면서 시공 능력이 확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건설사들 끼리 경쟁을 하다 보니 더 좋은 자재를 쓰고, 상대 건설사 보다 더 튼튼하게 지어서 건설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하려고 했던 탓에 그 결과 이 당시에 지어진 아파트들이 기존에 비해 더 튼튼하게 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파트 구조의 기준점이라고 말하고 있는 71년도 ~74년까지 진행된 반포 1단지 아파트의 경우, 기존 아파트가 가진 문제점들을 많이 해결하게 되었으며, 또한 일부 세대 중에는 2개 층을 한 세대가 사용할 수 있는 메조넷형 주택으로 구성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에는 혁신으로 꼽히는 지역난방설비가 들어간 아파트 입니다.
4. 아파트 건설 기술의 시험 평가의 무대 - 잠실 주공아파트 단지
반포1단지 아파트가 그동안 검증된 기술을 총 동원해 시공을 했다고 한다면, 잠실 아파트 단지는 반대로 해외에서 들여온 건설기술들을 적용해 보는 한마디로 건설 기술 테스트베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잠실 아파트 단지에서는 그동안 성장한 건설 기술과 자재, 기구들이 총 동원되고 연 680만명의 인력이 동원된 대단지 아파트 공사였는데, 특이한 점은 모두 같은 건설 공법으로 시공을 한 것이 아니고 타입별로 RC구조, PC구조, 고압별돌 조적조까 총동원을 해서 시공을 하게 됩니다. 2단지에서는 19평형대가 최초로 고압벽돌 조적조를 시도해서 지어졌고, 건축기술 비교를 위해 같은 단지에서도 17평형대는 RC조로 130세대를 시공한 다음, 13평형대는 PC 조립식으로 3600여 세대를 공사를 합니다.
말 그대로 건설 기술 평가를 위한 시험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난방과 단열에 엄청 많은 신경을 썼던 아파트이기도 합니다.
잠실주공은 벗나무를 조경 식재로 사용한 최초의 단지이기도 합니다.
** 잠실 대단지 아파트가 군사 목적을 위해 엄청 튼튼하게 지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국방부에서 포대를 설치하기 위해 추가로 bay하나를 늘리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 다른 아파트에 비해 더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건 사실무근입니다. 물론 고강도 철근을 사용했고 콘크리트 강도도 상대적으로 높은 품질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만큼 벽체 두께도 이전에 비해 얇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튼튼하다고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과거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반포주공1단지 아파트 벽체하고 잠실아파트 벽체하고 비교해 보시면 답이 나올거에요.
5. 최고급 기술을 선보인 압구정 현대아파트
1974년 압구정 1,2차 단지를 시작으로 현대건설이 민간주택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15층은 그 때 당시에는 최고층의 기준에 속하는데, 이를 위해서 무량판 구조를 이용해 시공을 하게 됩니다.
무량판 구조는 일반 철근콘크리트 라멘조와는 다르게 하중을 받쳐주는 수평기둥 없이 슬라브를 수직기둥이 직접 지탱해 주는 구조입니다. 층간 소음에서 가장 유리한 공법이기도 합니다.
6. 건축자재 품귀현상이 만들어낸 현상 - 반포 주공 2,3단지와 둔촌주공
그런데 이후 77년 8월~ 78년 8월에 시공된 반포 2,3단지의 경우에는 시멘트, 철근 등의 건축자재 품귀현상때문에 일부 소형평형은 고압벽돌로 짓게되는데, 고압벽돌로 벽을 세웠을 경우 매우 정밀한 시공을 필요로 했는데 , 입주 예정자들의 독촉에 밀려 야간공사 까지 감행하는 등 부실공사의 사례가 많이 나왔고, 공사 도중 배관 공사 가스 주입시험 중에 폭발이 일어나는 등 좀 이슈가 많았던 단지입니다.
둔촌주공아파트은 단열과 방음에 엄청 신경을 썼긴 했지만 반포 2,3단지와 마차가지로 중층의 소형평형대는 고압벽돌조/ 중형 평형은 철근콘크리트 라멘조로 지었고, 고압벽돌에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이슈들이 많이 제기됩니다. 그 이후로는 고압벽돌조를 사용한 대단지 아파트는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일부 구간을 PC공법을 활용해서 시공을 하는 단지들이 늘어나게 됩니다.
7. 드디어 벽식 구조 아파트 등장 (1980년대 초)
70년대 말 경제위기 + 대통령 살해, 신군부 집권에 이르는 국내 상황에서 1980년대 신군부도 역시 마찬가지로 부동산 개발을 통해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계획을 실행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1980년대 세계경제 상황이 완전 폭망상태였다는 겁니다. 국제원유가격은 폭락하고 해외로 진출한 건설회사들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가 나는 상황에 부동산 시장이 멀쩡할 리가 없죠.
그래서 전두광은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해 저수지, 공업기지, 도로, 해안매립지 개발등 정부발주 공사들을 통해 건설사들에게 돈을 뿌려대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과천신도시, 개포, 고덕 등 아파트 단지들을 공급하는 식으로 부동산 경기를 끌어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70년대를 거치면서 땅값이 많이 올라버려서 기둥이 차지하는 면적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개포주공부터 일부 단지를 벽식구조를 사용해 시공을 하게 됩니다.
벽식구조는 보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 층고를 높이지 않아도 되니까 공사비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대량건설을 위해서 아파트 평형대 구조를 표준화 시켜서 찍어내는 아파트의 시공이 가능해진 시기도 이때였습니다.
전대갈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건설경기 부흥을 이끌어 보려고 했지만, 세계경제의 형향으로 건축재료 부족과 건설인력난의 문제가 겹쳐져서 부실시공이 가장 많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건설자재들이 워낙에 고가에 거래되다 보니 현장에서 건설 자재 빼돌리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졌으며, 현장 소장이 아파트 현장 한 번 들어가면 근처에 2층짜리 집 한 채를 공짜로 지어서 나온다는 말이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8. 부실시공에 따른 건축 구조 안정성 표준 법제화 -(1980년대 중후반)
1986년 상계 신시가지를 시점으로 산본, 분당을 신도시로 구성해서 아파트 단지를 몰아넣기 시작합니다.
지가 상승은 아파트의 고층화를 만들어 냈고, 시공 단가를 낮추고 용적율을 높이기 위해 라멘구조를 버리고 벽식구조로 전환을 하게 되는데 시공 상의 문제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부실시공 논란이 거세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건축 구조 설계의 정밀성과 안정성을 위해 해외의 구조해석기법을 도입하고 콘크리트 강도 및 품질 기준을 강화시키게 된 것 이 시기입니다.
9. 신도시 건설
CAD설계가 도입되고 해외의 선진 구조해석기법을 도입해서 구조설계의 안정성을 높이기 시작한 시기가 1990년대 부터 입니다.
콘크리트의 극한강도 구조계산이 실질적으로 이뤄진 시기도 이때입니다. 내진구조 설계도 이때 부터 시작했고, 결로방지, 소음공해 대책, 단열재 보강, 창호 기밀성에 대한 대책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즉 1990년대 지어진 아파트들은 기존에 지어진 아파트의 문제점들을 주먹구구식으로 땜빵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발전, 보완해 나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거기에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바다모래 아파트 이슈들 여러 악재들이 터진 것도 이유겠지만 여러 문헌에서 그 어느 때 보다 관리 감독이 철처하게 요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1990년대 중반 (95~96년 즈음)부터 공사가 들어간 아파트들이 그래도 중~상타는 치지 않나 싶습니다.
10. 90년대 후반
그동안 개선을 통해 벽식구조의 단점이 거의 해소되었다고는 기록하고 있기는 한데, 다른 한 편에서는 IMF를 거치면서 건설자재회사 및 건설사의 부도 등으로 인해서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었고 80년대 후반에 벌어졌던 일이 똑같이 반복된 케이스들도 적지 않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IMF이후에는 아파트 건설이 급감했던 시기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11. 2000년도
90년도 후반부터 2000년도 초반은 사회적 부의 양극화가 벌어졌던 시기입니다.
IMF로 국민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건설업체는 여기저기 난립을 합니다. 부도가 나서 피눈물을 흘리며 헐값에 부동산을 처분한 사람들로부터 사들인 땅을 이용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거기데 더불어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DJ정부에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양도소득세 면제, 분양가 자율화가 시행되면서 IMF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서 투기 광풍이 다시 몰아 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의 퀄리티가 확 올라갑니다. 판상형에서 타워형으로, 드레스룸과 보조주방까지 갖춘 대형평형대의 아파트가 주를 이루고 25층~30층 정도는 되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수준이 됩니다. 초고증 주상복합아파트들이 부의 상징이 되었고, 주차장은 지하로 내려가고 지상은 단지내 조경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주택공사가 선두하던 아파트 시장이 주춤하고 대형 건설회사 브랜드를 내건 대단지 아파트들이 자체 브랜드화 되어 고급화를 이끌어 가게 됩니다.
아파트가 고품격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전적으로 외적으로 드러나는 고급화일뿐 내적인 발전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12. 2000년 중,후반
부동산 투기 열풍이 지속되면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집값을 잡기 위해 분양권 전매제한, 투기과열지구 확대 등을 발표하긴 했지만, 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에게는 이런 대책은 '안걸리면 그만' 이라는 마인드가 있었고 투기꾼들의 작전과 맞물려 자전거래부터 시작해서 각종 편법으로 부동산의 가격을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건설사들도 좀 살만해 지니까 이 때부터 날림으로 아파트를 짓기 시작합니다. 짓기만 해도 사람들이 막 사가니까 맘 놓고 해먹기 딱 좋았던 거죠. 콘크리트 양생도 대충대충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짓는다는 말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러다 입주하고 나서 하자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결국 정부에서 집중 관리에 들어갑니다.
13, 2010년 초 중반
층간소음기준 관련 규제가 법제화가 된 것이 2014년 입니다. 오죽 했으면 법으로까지 지정해서 이 이하로는 짓지말라고 규칙까지 만들었을까요?
2000년도 후반까지 횡행하던 날림 시공의 덕분에 2010년 들어서부터 각종 규정들이 강화되어 아파트 시공이 그래도 조금은 양호해 지게 됩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렇게 난리던 부동산 투기 열풍이 2010년 들어서면서 부동산 경기가 확 다운이 됩니다.
그러자 건설회사와 시행사들이 각종 최고급 건축자재와 선진기술들을 퍼부어가면서 분양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도 수도권에는 미분양 아파트들이 넘쳐나게 되는 정도로 아파트 분양시장은 다시 침체기에 접어 들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0년 초 ~ 중반의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지어진 아파트들이 가장 고급화+ 안정성이 높다는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0년도 후반부터는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부분들이 많아서 제가 언급하기 차마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뭐 일본산 폐자재 수입부터 시작해서 슬러지 등등 여러 이슈가 있기는 한데 아규거리들이 많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루한 글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