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30대입니다. 오늘 저랑 제 바로 윗 선임, 그리고 과장님... 0
적당한 규모의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30대입니다.
오늘 저랑 제 바로 윗 선임, 그리고 과장님이랑 외근을 나갔다가 셋이서 점심을 먹게 됐어요.
원래는 구내식당에서 주는 밥 먹는데 오늘은 외근이라 법카로 외식을 한 거죠.
제일 가까운 곳에 찜닭집이 있었고,
저희는 평범한 간장 찜닭을 시켰어요.
주문한 메뉴가 나왔는데, 순간 든 생각이
아, 나는 닭다리 못 먹겠구나.. 하는 거였어요.
닭다리는 당연히 두 개 뿐이고 저는 셋 중에 젤 직급도 낮고 나이도 어리니까.
사실 진짜 웃기게 들리겠시겠지만,
저는 닭다리에 약간 한 맺힌 게 있어요.
집에서 야식으로 치킨을 시키면 닭다리는 꼭 두 개 다 오빠꺼였어서... 오빠는 식탐은 없는데 치킨 시키면 꼭 닭다리만 고집하고 그거 두 개 먹고 나면 젓가락 내려놔요. 남은 건 저랑 아빠랑 엄마가 다 먹으니 양이 모자랄 일은 없지만(야식이니까) 그래도 너무 당연히 제일 맛있는 부위를 오빠한테만 주는 게 속이 상하더라고요. 이걸로 싸워도 봤는데.. 뭐... 저만 천하의 식탐녀가 되길래 이젠 말도 안 합니다.
무튼 그래서 찜닭이 세팅됐는데,
닭다리 두 개 인 거 보자마자 오늘따라 더럽게 서럽더라고요. 진짜 아무 이유없이 그냥... ㅜ ㅋㅋ
나는 먹을 복이 진짜 드럽게 없다, 왜 하필 이 조합으로 외근을 나와서 닭다리도 못 먹고...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과장님이 젓가락 집자마자 닭다리부터 집더라고요. (그때 제 선임은 업무 전화로 잠시 나가있었음)
그래서 좋겠다.. 맛있는 부위...하고 있었는데 과장님이 본인 앞접시에 닭다리를 놓더니 제 빈 앞접시랑 갑자기 바꾸셨어요.
깜짝 놀라서 저 다리 안 먹어도 된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는데, 과장님이 이게 뭐라고~ 그냥 먹어~ 하면서 남은 다리 하나를 더 집어서 자리에도 없는 제 선임 앞접시에 올리셨습니다. 그러더니 본인은 날개를 가져가시더라고요.
과장님이 닭다리를 정말 좋아해요.
몇 년 전에, 본인 남친이 닭다리 두 개 다 먹어서 빡쳐서 헤어진 썰 들려준 적도 있었고, 작년 과장님 생일 때 옆자리 동기가 과장님은 닭다리 엄청 좋아해서 다리로만 된 거 보내야한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다리 두개 다 저희한테 주시고 자기는 좋아하지도 않는 날개를 드시는 게...
그리고 무엇보다 닭다리를 저한테 먼저 양보한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이라....
진짜 넘넘 바보같긴한데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진짜 다시 생각해도 넘 등신 같긴한데 눈물이 막 쏟아질 거 같아서 전화온 척 하고 폰들고 화장실 가서 추스르고 왔어요.
그렇게 식사 잘 하고 복귀했고, 퇴근까지도 잘 했는데... 이 시간까지도 저는 스스럼없이 닭다리 두개를 다 후배들한테 내어주시던 과장님 모습이랑, 제 앞접시에 큼직하게 놓인 닭다리가 생각나서 자꾸 눈물이 나요.
과장님은 왜 그랬을까요..
솔직히 직급도 높고 나이도 많아서 그거 먹는 걸로 아무도 토달지 않았을 건데 굳이 왜 그랬을까..
전혀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 감정은 감사하다,에 가까운 것 같고, 한편으론 닭다리 그깟거 좀 양보받았다고 마음이 슬픈 스스로가 넘 안됐고 그래요.
저도 정말 닭다리에 한맺힌 사람이지만,
저도 나이들어서 제 밑에 후배들이 많이 생기면 꼭 과장님처럼 하려고요.
아낌 받은 거 같은 그런 순간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