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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단에 앉았던 아이가 4분단의 삶을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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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둥s
24/07/08 23:54:02 24/07/08 23:54:02 15,002
 (14.♡.194.130)

몇 해 전,  뭔가를 검색하다가 블로그 글을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주인께서 수면 내시경을 받았다는 글이었는데요.

이 분이 사진을 올리시면서 이름을 안 가리셨더라구요.

그런데 이름이 낯이 익습니다.  지역도  같고, 연배도 비슷하고. 

게시글 몇개를 더 읽어보니,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


반가운 마음에 댓글이라도 달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그만두었습니다.

시골로 귀농을 하셔서 텃밭 일구시며 사모님하고 알콩달콩 살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지내시는구나. 여전하시네. 하면서 블로그 구경을 하고 있었지요. 


아, 그런데..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처음에 읽은 글이 수면 내시경 글이었는데, 그 때 위암을 발견하시고 치료 받으시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신 것이었습니다.

망설이다 방명록에 글을 남겼습니다.


<선생님,  그곳에서도 아이들에게 로보트 태권브이랑 마징가 제트 싸우는 얘기 해 주고 계신가요?>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습니다. 

농담도 잘 하시고,  수업 중에 재미있는 얘기도 많이 들려 주셨구요.

친절하고 유쾌한 분이셨지만, 엄격한 면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동창인 다른 친구의 평은 달랐습니다. 


<차별 대따 많이하고, 진짜 짜증나!> 


저는 의아했습니다. 차별? 선생님이 차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고 가난하게 삽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저희 세대 까지는 본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세대였기에 부모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든든한 배경이 있는 친구들과는 출발선이 달랐고,  한계는 있었지만요.  뭐, 아무튼 지금 요 꼬라지는  다 제 탓입니다. ^^


제가 국민학생이었던 시절은 (넓은 의미에서의) 촌지가 자연스럽던 시절입니다.

학기 초면 부모들이 아이들 손에 선생님 선물을  들려 보냈고, 교실 비품은 아이들이 돈을 모아 구매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재력에 따라 아이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죠.

그런 상황에서도 제가 큰 차별을 못 느낀 것은 워낙에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라 특별 대우를 받는 아이들은 정말 소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나만 빼고> 가 아니라 <쟤만 빼고> 였으니까요.

게다가 제 기억에  위의  담임선생님은 그조차 없었어요. 부자고 가난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차별이라니, 저는 친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찾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당시는 교실에서 난로를 피웠어요. 조개탄? 그런 것도 태워봤고, 나중엔 나무모양으로 뭉친 왕겨? 그런 것을 쓴 것 같습니다.  

겨울이면 교실 한 가운데 큼직한 난로가 놓였고, 아이들은 그 난로 하나로 추위를 이겨야 했습니다. 옛 사람 인증하자면, 그때는 반에 아이들이 40명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1,2, 3,4 분단으로 나눠 앉았지요. 

운동장 쪽에서 복도 쪽의 순서로 1,2,3,4.


난로는 2분단과 3분단 사이에 놓였고. 아이들은 성적순대로 2, 3,1,4  순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따뜻한 2분단,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햇빛도 들지 않는 4분단에 앉는 것이지요. 아니, 국민학생이 공부를 해 봐야 얼마나 한다고 그 알량한 성적으로 아이들의 세상이 나뉜것입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관행 같은 것이라서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제가 겪은 모든 선생님들이 그랬으니까요. 


가난했지만 타고난 머리가 좋았던 저는 시험은 잘 봤어요.그러니 늘 2분단에 앉았습니다.  한번도 추워본 적이 없어요.

성적 순대로 자르다가 동점자가 나오면  두 말 할 것 없이  <의사 아들> 을 승격시킨 경우는 덤입니다. (이건 다른 선생님)


늘 2분단에 앉아있던 제가 그 불평등과 차별을 뻐에 새길 일이 있었을까요.

고작 열살 언저리의 아이들에게 그 알량한 성적이라는 것이 차별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있었을까요.


이제 마흔을 훌쩍 넘긴 저는 4분단의 삶을 삽니다.

집도 없고,절도 없어요.

어른이 되고 보니 '돈' 이 분단을 가르더군요.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는  배척의 대상이지만,

있는 자들의 특혜는 권위의 상징이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4분단 구석에서 추위에 떨면 안되는 것이겠지요.

같은 조건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돈이 많다고, 직업이 무엇이라고, 항상 따뜻한 곳에 앉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닙니다.


어른들이 난방 방식을 바꾸어야죠. 그러라고 있는 게 어른이니까요. 


지금 아이들의 교싷은 모두가 따뜻하겠지요.

세상은 느리지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세싱의 선의를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경험치라는 것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매일매일 깨닫는 중입니다.


늘 4분단에 앉았던 친구에게 선생님은 차별에 물든 나쁜 선생님이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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