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북경 (중국 베이징) 성벽에서 고구려성 특징이 보입니다. 0
첫째, 치성
모든 고구려 성에서 확인되는 방어 시설인 치(雉)는 보통 적들을 관측하기 쉬운 곳이나 또는 추가 방어의 필요가 있는 곳에 주로 설치하게 된다. 보통의 성벽이 적과 마주보고 전투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면, ⊓형태의 치는 성벽을 공격하는 적에게 측면 공격을 지원해줄 수 있어서 효과적인 방어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옹성
성문을 방어하기 위해 고구려 성에는 다양한 옹성(甕城)이 설치되는데, 주로 반원형이 사용되며 이 외에도 장방형, 지그재그식 등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셋째, 들어쌓기
무게중심을 안쪽으로 끌어들여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성벽을 갈수록 좁아지게 하는 것.
넷째, 맞물려 쌓기
고구려 성벽은 토성으로 된 내부 구조에 뾰족한 북꼴형 암돌을 맞물려 씌우고, 그 앞에 뒤쪽만 뾰족하고 앞쪽은 벽돌처럼 생긴 쐐기형 수톨을 끼워 맞물려서 포장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북경성은 그 길이가 외성은 14.4㎞, 내성의 길이는 자그마치 23.3㎞나 되고 성곽의 폭 (대형트럭 4대를 줄지어 세우고도 남음)또한 넓어서 성벽 규모의 장대함이 세계 최대인데 거기에 그 둘래를 뺑 에워싸는 거대한 해자까지 만약 이를 잘 보존했다면 그 자체로 세계문화유산이자 자금성 못지 않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한 눈에도 들어오는 "치"와 "옹성"이 보이는데 완벽한 고구려양식 아닌가요? 그래서 중화민국 건국 직후에 있었던 문화대혁명 당시, 건국문 같은 성벽의 일부를 제외하고 성곽의 대부분을 허물어버린 것 아닐까 합니다. 중국 당국이 뭐가 아쉬워 국가차원에서 발벋고 나서서 동북공정을 하려는지 이해가 안갔는데 북경성 치와 옹성을 보면 완전 빼박 아닙니까?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박하는 이론을 왜 세우지 않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북경성 내성 및 외성 포함 전체도
고려사에 여러번 언급됬던 낙타가 보이네요. 고려 시대 이후 조선으로 오면서 낙타는 역사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허물어지는 북경성 (중장비 없이 홍위병 인력만으로 이렇게 거대한 성벽을 허무는 것도 새삼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