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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가 세웠던 촉한에 대한 익주 백성들의 평가 (32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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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24/02/15 11:42:02 24/02/15 11:42:02 20,388
 (14.♡.194.130)


유선이 항복하고 40년 정도 지나서 진나라는 팔왕의 난 오호16국으로 개판이 되었는데


이시기에 사천 지역은 저족이 장악한다


저족의 왕 이웅은 성도에서 개국하면서 국호를 성으로 하고 연호는 건흥으로 했다 

(건흥은 촉한의 연호)


명군 이웅이 죽고 후계자들이 개판을 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민심 수습책으로 이번엔 국호를 성에서 한으로 고쳤다 (한은 촉나라의 정식 국호다)


유비의 증손자인 유현(차남 유영의 손자)은 영가의 난을 피해 사천으로 도망가서 유선이 받았던 안락공 작위를 받고 대우받으며 살게되었는데


영가의 난 때 유선의 후손은 흉노에게 몰살당해서 현존하는 유비의 후손들은 다 유현의 후손이기도 하다. 


즉 성한 정권은 연호와 국호를 잇고 유비의 후손을 보호하고 있으니


백성들에게 자기들은 촉한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계속 어필한 셈이 된다


성한이 건국된 시기는 촉한이 망한지 40년이 넘었고 유비는 죽은지 90년, 제갈량은 죽은지 70년이 넘어갔는데도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


사천 백성들이 유비와 제갈량과 촉한 시대를 그리워 하지 않았다면 저족의 왕조가 민심 수습용으로라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그 백성들이 유비나 제갈량이 살아있던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구전으로 아 옛날에 한나라있고 소열제는 당대영웅이었고 제갈무후 살아계실적엔 살기가 좋았다던데..하는 수준을 넘어 이 시점에 이미 반쯤 신앙으로 진화한게 아니었을까 추측이 가능하다


조씨나 손씨, 사마씨를 백성이 그리워했단 소리는 들은적도 없고 조위와 손오, 사마진의 정신적 후속작이라도 자처한 나라는 이후에도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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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도 사천의 유비 무덤과 제갈량 사당은 건드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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