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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묘 개장 후기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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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24/02/16 13:41:01 24/02/16 13:41:01 15,513
 (14.♡.194.130)

어느덧 제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 나이에 아버지가 가셨으니, 비교대상으로서의 이제까지 아버지의 모습은 있었으나, 앞으로는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버지가 나이가 더 많아진다는 것에 느낌이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27년전에 강원도 철원 공원 묘지에 모셨습니다.  당시 가족묘도 없기도 했고, 경황도 없어 장례식장에서 연결해준 곳이 연고도 없는 철원이었습니다.

공원묘지다 보니 정기적으로 관리비를 내야 하고, 때마다 찾아가야 합니다.

어머니도 연세가 되시나 보다, 가끔 아버지묘는 어떻게 하고, 자기는 어떻게 할지를 묻곤 합니다.  지금 모신 옆자리에 묻힐 수는 없으니까요.

언젠가, 언젠가 나중으로 미루기만 하다, 마침 여러가지 일들이 맞물려 시작했습니다.


만성신부전증이란 병명도 얻었고, 권고사직도 해서 한가해진 점도 있어,  숙제로 남아 있는 일들을 이 참에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손없는 날'과 같은  풍수지리에 개의치 않기에 붐비지 않는 가장 빠른 날짜로 잡았습니다.

'손없는 날'과 같은 경우는 화장장 예약조차 힘들어 화장장에서 화장하지 못해서 공원묘지 드럼통 화로에 토치로 화장하는 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공원묘지에 개장 대행을 맞겼습니다. 

개장, 이장 이란 용어가 있는데 개장은 매장을 파서 화장하는 방식이고, 이장은 매장을 파서 그대로 다른 곳으로 매장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화장장 예약은 최소 15일전에 가능하고 하여, 개장일을 2월3일 토요일로 정하고 계약했습니다.

계약하고 나서 어머니께 알리니, 이 한겨울에 무슨 개장을 하냐고 타박을 하십시다.


개장 대행 비용은 130만원이고, 내역은 파묘에서 부터 운구, 화장 신청, 화장 시작 까지입니다.

공원묘지 자체적으로 하지는 않고, 공원묘지에서 하청을 줘서 진행하는 거라서 공원묘지에서 알려준 하청업체 계좌로 입금하였습니다.

준비물은 제 신분증과, 주민등록말소초본, 그리고 새 장지 지번이 다 입니다.

화장일 전 주민등록말소초본과 새 장지 지번을 카메라로 찍어 보내줬습니다.


파묘 시각을 10시로 정해, 그 시간에 맞춰 어머니와 네형제(누나 둘, 남동생과 저) 간만에 다 같이 같습니다.

공원묘지에 도착해서 관리사무실에 신분증과 주민등록말소초본을 제출하고, 비용 입금을 했습니다.

묘지로 가니, 이미 포크레인으로 관 바로 윗까지 봉분은 파 놓은 상태였습니다.

뼈를 찾는 발골 시작은 저희들 도착하고서 호미와 장갑을 낀 손으로 하시더군요.


우습게도 발골 시작전까지 가장 큰 걱정은 혹시나 시신이 충분히 분해안되어 미이라처럼 살점이 남아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거였습니다.  다행히 잘 자연으로 분해되어 뼈들만 잘 있었습니다.  27년만에 마주한 아버지는 이렇게 작은 뼈들로 식구들을 먹어 살려느라 고생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당시 장례식장에서 아주 좋다고 한 비싼 삼베옷은 가짜였는지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더군요.


벽제 화장장 예약이 3시반으로 되어있기에, 공원묘지에서 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저와 동생은 벽제 화장장으로 갔습니다.

봉고차 크기의 운구차는 화장 시간에 맞춰 도착하여, 화장 절차를 해 줬고, 담당 운구 직원도 매우 친절하였습니다.

서울 시립 벽제 화장장은 오전은 발인을 마친 시신만 되고, 오후 3시부터가 개장 가능한 방식이더군요. 예전에 할머니와, 외조부모 장례때에도 화장장 예약하느라 상조업체와 상주 바삐 통화하고 조율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오후 개장 화장 시간대라서 화장장도 상대적으로 차분해진 분위기입니다.


화장 시간에 되어 유골함을 화장 담당 직원이 정중하게 화장로 모시고 들어가고, 저희가 유리창으로 화장로까지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자, 자동으로 유리창 가리개가 내려오더군요.


개장 화장이라 시간이 30~40분 정도 짧게 끝났습니다.  끝난다는 안내를 받고, 유골 수습하는 과정과 분쇄하여 나무함에 모시는 과정 본 후 건네 받았습니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따뜻한 목함을 안고 어머니 집에 갔습니다.

그 다음날 가족묘가 있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전날과 같이 어머니와 네형제가 한 차에 타고 갔습니다.  큰누나가 카니발을 렌트하여 운전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진 후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한 큰 누나라 항상 의지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가시기 전까지도 이렇게 온 식구 한꺼번에 한차에 타 본 기억이 없었는데, 아버지 포함 6명이 이렇게 한 차에 탔다는 것이, 그리고 이게 처음이나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뭔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자연장으로 구성된 가족묘에서 이미 아버지의 형제들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8남매의 장남이었는데, 그 중 아버지와 고모 한 분이 없이 6남매가 계십니다.  고모 한 분이 아버지 한번 만져 보자고 하시며, 목함을 어루만지시며 눈시울이 살짝 젖으시더군요.


조부모 비석 아래 자리에 목함을 묻고, 그 아래 비석을 놓는 것으로 미루고 미뤘던 개장 숙제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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