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히트 작품을 못나오게 만드는 각계의 문제들 0
1. 국내 환경의 문제
1-1. 코딱지만한 국내 내수시장.
-> 어떻게든 자급자족이 가능한 일본 내수시장과는 달리 한국의 내수시장은 매우 작음.
그리고 절대적인 시장 체급의 부족함은 소위 '잘 팔리는' 상위권 작품이 아닌 이상 작가들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불가능하게 만듦.한국은 인구도 반토막이고, 급격한 저출산 노령화로 웹툰의 주 수요층인 10~20대가 박살나고 있는 상황이라 미래가 암울함.
1-2. 서브컬쳐 문화컨텐츠에 적대적인 정치권과 기성세대
->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현재 한국의 정치권의 높으신 분들은 60~70년대생으로 문화컨텐츠 전반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으며 만화 같은 서브컬쳐 영역에는 무척 적대적인 세대임.
옛날 한국 만화계를 박살낸 한 축으로 꼽히는 악명 높은 YMCA가 딱 저 세대에서 나왔음. (참고로 얘들은 아직도 활동중임)
그렇다고 그 다음 세대, 현대 사회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70~80년대생들은 괜찮은가 싶으면 그것도 아님. 이 세대는 정치적 이슈로 인해 일본에 대해 무척 적대적인 세대로, 일본에 영향을 많이 받은 서브컬쳐 영역 전반에 걸쳐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함.
소위 "만화 그거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거 아니냐.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그런거나 보냐" 소리가 나오는 세대임. (물론 겉으론 그러면서도 보는 사람은 다 봄)
이러한 이유로 겉으로나마 만화에 적대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적 인식은 웹툰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어렵게 만들고, 지속적인 관심을 저해시킴.
다만,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네이버 카카오같은 공룡기업이 들어와서 시장을 키우고 해외에서 좋은 성적도 거두고 드라마 영화화로 크게 터지는 작품들이 생기면서 기성세대도 국뽕충전하며 좋아하는 한류열풍의 한 끄트머리라도 차지한 덕에 인식이 많이 나아진데다 조금씩 관심도 기울이는 중이라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거라 생각함.
1-3. 기생충과 같은 순문 출판업계
-> 당장 큰 문제는 아니지만, 흔히 문단으로 일컫는 순수문학 출판업계는 시장 규모가 큰 웹툰과 웹소설에 대해 지속적으로 빨대를 꽂으려고 하고 있음.
여기서 크게 다룰 내용은 아니지만, 쉽게 말하자면 그냥 호시탐탐 돈 뜯어먹을 생각만 하는 놈들임.
다행히도 이쪽은 플랫폼과 웹툰업계 사람들이 합심해서 잘 막아내고 있음. (반면 웹소설 쪽은 서로 물고뜯고 하느라 아슬아슬하더라)
2. 시스템의 문제
2-1. 웹툰 수익구조의 근본적인 한계
-> 웹툰은 태생이 인터넷에 간단하게 올리는 짧은 꽁트형 만화에서 시작했음.
당연히 그런 짤만화에 돈을 내는 거는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고, 카카오의 기다리면 무료 체제 등장 이전까지 웹툰은 트래픽으로 광고수익이나 빨아먹는 '공짜' 컨텐츠였음.
당연히 거기서 형성된 웹툰 독자층은 '내가 보는 만화에 정당한 값을 치르고 구매한다' 가 아니라 '웹툰은 공짜로 보는거'라는 인식이 생겨버림.
시장에 도는 돈이 적어지고, 그나마 발생한 수익은 플랫폼이 다 떼먹고 창작자에겐 적은 비율만이 들어감.
당장 먹고살 돈이 안 된다보니 재능있는 사람은 웹툰작가를 떠나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양1산형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할수가 없음.
현재는 카카오 기다리면무료 시스템의 등장 이후로 네이버에도 쿠키 미리보기 시스템이 생기면서 어느 정도 수익구조가 개선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음. 이벤트 쿠키(카카오 선물함)의 존재 때문임.
이벤트 쿠키는 작품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일종의 미끼상품으로, 플랫폼 측에서 비용(쿠키는 땅에서 솟는게 아님)을 부담해서 독자들에게 뿌리는 것임.
그리고 그 이벤트 쿠키를 만드는 비용은 플랫폼이 혼자 부담하는게 아니라 작가들에게 전가시킴.
이러한 이벤트 쿠키는 당장 매출을 올리기엔 좋지만, 결국 작가들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아 웹툰은 여전히 공짜로 볼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주게 됨. (물론 이전의 웹툰은 완전공짜라는 인식 때문에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해되긴 함)
어느 나라나 만화 불법사이트들이 존재하지만, 유독 한국에서 불법 만화에 관대하고 너나할것없이 보는 데에는 이러한 인식이 큰 몫을 차지함.
(이런 인시의 형성에는 일본 출판만화가 한국에 정발이 안되거나 늦게 되면서 해적판이 범람한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함)
그나마 한때 레진코믹스의 등장으로 작품에 정당한 돈을 내고 소비하는 문화가 어느정도 정착되나 싶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많은 '그 사태'로 플랫폼이 개박살이 나면서 영영 떠나가버림.
4-1. 부족한 역량
-> 까놓고 말해서 고점 기준이 아니라 평균 기준에서 보면, 일본 출판만화에 비해 웹툰 작가들은 순수하게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거임. 특히 인체, 구도, 연출 등의 만화적 기본기 관점에서.
이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음.
일본 출판만화는 일부 개그만화가 아닌 이상 기본기가 부족하면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만, 한국 웹툰은 기본기가부족해도 재미만 있으면 작가가 될수 있기 때문임.
한때 논란이 많았던 '못그려도 돼, 웹툰이니까!'는 그 문제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상징과도 같은 표어임.
한국 웹툰은 근본이 인터넷에 재미로 올리던 짤막한 꽁트만화였고, 그래서 굳이 기본기를 쌓을 이유가 없었음.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나온 결과가 그림 잘 모르는 독자들도 인체비례를 지적하는 수준의 웹툰들이고.
일본 출판만화는 어지간한 재능충이 아닌이상 학창시절에 그림을 그리든 뭘 하든 해서 10년은 노력하면서 기본기를 쌓고 만화에 도전함. 그정도가 아니면 취급을 안해주니까.
반면 한국 웹툰은 말 그대로 팔다리만 그릴 줄 알면 일단 만화를 그릴 수 있음. 만화 기본기 관련 책을 1권이라도 뗐으면 노력 많이 한 거임. 그리고 그 정도 실력으로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음.
현재 웹툰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대부분 멸망한 한국 출판만화 계보를 이어오는 사람들이나, 혹은 원화나 일러스트 등 유사업계 등에서 일하면서도 자기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사람들임.
만화에 대한 기본기 자체가 부족한데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당연히 무척 어려운 일 수밖에 없음.
4-2. 스토리의 부재
->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건 작화지만, 장기 연재에서 작품의 흥행을 좌우하는 건 스토리(그리고 연출)임.
하지만 현재 웹툰 작가들은 스토리에 대한 역량이 무척 빈약함.
이건 작가 능력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던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의 시스템 문제이기도 함. 당장 마감이 코앞에 닥쳤는데 스토리를 고민할 생각이 어디 있겠음?
옛날 웹툰들을 보면 스토리 쪽은 비교적 준수한 경우가 많았음. 그림작업에 대한 압박이 비교적 덜한 시대였다 보니까 스토리에 충분한 고민을 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임.
하지만 그게 현재 웹툰 작가들의 스토리 역량 부족에 대한 면죄부는 되지 못함.
현재 웹툰들 중 스토리적 요소도 준수한 작품들은 웹소설 원작인 경우가 많음.
앞서 말한 것처럼 웹소설 원작들이 대부분 양1산형 작품들에서 기인한 것을 감안하면, 현재 오리지널 작품들의 스토리텔링 역량이 그 양1산형 작품들조차 넘기 힘들 정도로 낮다는 것을 의미함.
물론 양1산형 작품들의 스토리 역량은 결코 낮은 게 아니긴 함. 걔들은 너나할것없이 양1산형이라는 무기를 들고 오는 웹소설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배틀로얄로 살아남았을 정도로 농축된 고퀄리티의 양1산형이기 때문임.
그러나 오리지널 작품 작가들은 충분히 차별화될 수 있는 소재와 스토리를 가지고 그 양1산형 스토리들과 맞붙어서 이기질 못함. 기본적으로 소재는 반짝할 수 있어도 스토리를 제대로 연구하는 작가들이 거의 없으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개인 공방 작품이 어지간히 잘 하지 못하면 공산품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임.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많은 작가들은 스토리에 대한 중요성을 깨우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그나마 연재를 좀 해본 작가는 스토리의 중요성을 알지만, 뭣도 모르는 지망생들은 스토리고 나발이고 대충 양1산형으로 그리면 되겠지 하고 작화에만 신경을 쓰거든.
근데 그렇다고 따로 스토리 작가를 구하기엔 업계에서 나 스토리 작가요 하는 사람들의 꼬라지가 처참한 수준임.
방구석에서 혼자 설정놀이 하는 놈, 웹소설 한다고 몇 줄 끄적이다가 도태된 놈, 드라마판 순문판에서 기어들어온 놈, 철이 덜 든 씹덕 등등, 멀쩡한 스토리 구상 능력을 가진 사람은 천연기념물이나 마찬가지지. 하다못해 웹소설 하던 작가 정도면 스토리작가 지망생 중에서도 상위권이라 할 수 있음.
작가의 스토리 역량 자체가 부족하고, 스토리의 중요성도 잘 모르고, 그렇다고 전문 스토리작가를 구하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메가히트를 할만한 웹툰이 나오지 못하는 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
5. 독자의 문제
5-1. 낮은 연령대와 충성도가 없는 기형적인 독자풀
-> 인구가 적은 한국 서브컬쳐 시장의 크기는 코딱지만함. 그리고 그중에서 웹툰 시장은 더욱더 먼지만함.
그런데 정작 그 독자층의 구매력도 형편없다는 게 문제임.
서브컬쳐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건 매니아층임. 이들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컨텐츠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거든.
그런데 문제는, 한국 웹툰시장의 주요 독자층은 매니아층이 아니라는 거임.
한국 웹툰시장의 주요 독자층은 10~20대층의 "비씹덕 일반인" 독자들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음.
이건 웹툰의 근본이 출판만화가 아니라 인터넷에 연재되던 짧은 공감만화들에서 기인했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음.
이 일반인 독자들은 매니아층에 비해 규모는 훨씬 크지만 개개인의 구매력은 매우 적음.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으니 총 구매력이 크고, 네이버와 카카오는 그 커다란 총 구매력에 포커스를 맞췄음.
거기에 매니아층은 일본 출판만화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있는 반면에 일반인 독자들은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이었지.
그런데 문제는 충성도임.
일반인 독자층은 무척 쉽게 변심해서 떠나가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독자층을 수혈해야 함.
네이버와 카카오가 저출산으로 박살나는 한국 시장에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서 기를 쓰고 확장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
(다만 해외에서는 서브컬쳐 자체가 마이너로 못박힌 상황이라 해외의 일반인 독자들을 유치하는 것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상황임. 현지 작가들과 계약해 한국처럼 공감툰으로 저변을 넓히려고 해도 걔들 자체가 씹덕 매니아층이라 일반인 독자를 겨냥하는 만화는 안 그리기 때문임. 한국에서 웹툰이 성장한 건 한국의 출판만화 멸망과 인터넷 보급이라는 타이밍과 잘 맞아서 가능했던 일임)
거기에 부족한 충성도는 불법스캔본의 유혹에 쉽게 빠지기도 함.
매니아층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면 불법판을 배척하고 정당한 대가를 주려고 노력함. 하지만 일반인층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적은 만큼 공짜로 볼 수 있다면 불법이라고 해도 거부감이 덜함.
거기에 독자층의 주요 연령대가 돈이 없는 10~20대의 저연령 층이기 때문에 구매력도 많이 부족하고, 취향도 무척 편향적임.
네이버 웹툰에서 간간히 나오는 좋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순위권 중하위권에 처박히고 쿠키수익이 안나와서 허덕이는 데에는 그런 환경도 한몫함. 아무리 좋은 작품을 그려도 플랫폼의 독자층이 원하는 니즈가 아니거든.
또한 이런 라이트한 독자층들은 양1산형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덜함. 서브컬쳐라는 분야를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으니 양1산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이만큼 재밌는 것들이 없음. 그런데 그렇게 몇년정도 지나서 양1산형이 질리는 시점이 오게 되면 충성도가 없으니 웹툰 시장에서 다른 작품을 발굴하기보단 그냥 유튜브나 다른 재미있는 것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가는 거고.
5-2. 떠나간 매니아층
-> 웹툰에도 매니아층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음. 한때는.
흔히 지금도 많이 언급되는 옛날 명작들이 잘나가고, 레진코믹스가 다크호스로 떠오르던 시기에는 웹툰판에도 충성도가 높은 매니아층이 꽤 존재했음.
그들은 자기들이 재밌게 보는 작품들이 잘 돼서 언젠가는 애니도 만들어지고, 해외에도 뻗어나가고 하는 희망찬 미래를 꿈꿨음.
하지만 옛날 명작들은 폼이 무너지면서 연금화가 돼버리고, 업계는 점점 공장화가 되어가며, 레진코믹스 사태로 웹툰작가들에 대한 인식까지 악화되어 버리자 매니아층들은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함.
레진코믹스 사태의 연장인 예스컷 운동은 업계의 검열로부터 작가들을 지지키던 매니아층 독자들이 작가와 업계에 등을 돌리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음.
그때를 기점으로 웹툰 업계에서 매니아층 독자들은 점차 떠나가게 됨.
그리고 그렇게 떠나간 이들 중 적잖은 수는 웹툰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냉소적으로 변함.
웹툰이 메가히트를 하고 해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려면 그만큼 코어 팬층이 두터운 게 유리함.
이런 코어팬층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위해 계속해서 관심을 환기시키고, 유무형의 마케팅적 이점을 주기 때문임.
그런데 현재 웹툰 시장에는 그런 코어 팬층이 형성될 매니아층 자체가 전멸한 상태고, 거기에 '웹툰은 글렀어'하는 냉소적인 기류마저 흐르고 있는 상황임.
->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임. 누구나 알고 있을테니까.
특히 웹툰 판에 남아있는 매니아층 중에서 특정 사상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많은 편이기도 함.
이것도 불편하다, 저것도 불편하다 하면서 독자들이 창작의 자유를 옥죄면 플랫폼은 작가를 옥죄고, 당연히 재미를 추구하는 작가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음.
그러면 결국 좋은 작품은 나올수가 없지.
또한 그런 특정 사상 문제는 앞서 말했던 여초화된 실무진 문제와 시너지를 일으켜 더욱 심각한 쇠사슬로 변해버리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