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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이 권력을 획득한 방법-파티 정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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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24/02/21 13:50:02 24/02/21 13:50:02 2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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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당시 김정일의 모습)

1974년에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김일성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당과 군의 원로들은 김정일의 능력을 의심하며 불신하고 있었음. 따라서 김정일은 이들을 포섭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음. 그래서 김정일은 이 때 부터 파티 정치를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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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조의모습)


(김정일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요리한 음식을 맛보는 북한 간부들)



파티에는 온갖 달러 다발과 고급 술과 산해진미가 즐비했으며 김정일은 달러 다발을 내기를 걸고 간부들에게 술게임을 시켰다고 함. 독주를 원샷으로 마신 간부에겐 달러 다발을 선물해주고 토하면 화를 내면서 도로 압수해갔다고함.


심지어 날짜마다 파티의 테마도 달라졌는데 <<뉴욕의 밤>>일 때에는 파티장을 미국 사교파티장처럼 꾸미고 참석하는 간부들에게 미국 연미복과 실크헤드들을 지급하고 <<파리의 밤>>일 때에는 프랑스 살롱처럼 꾸몄다고 함.


크리스마스 날 파티에는 연회장 입구 양쪽에 2m 정도의 큰 공을 매달아놓았고 그 공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담겨져 있었음. 공에는 전자장치가 되어있었고 김정일이 공을 향해 전자 권총을 쏘면 그 공이 열리면서 금은보화가 쏟아지고 간부들은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쟁탈전을 벌였음. 김정일은 이를 보면서 상당히 흐뭇해 했다고 함.


연회장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즐비했음. 이들은 소련 대중가요, 남한 대중가요, 구 일본군가까지 부르면서 노래자랑도 했으며 특히 김정일은 구 일본군가인 '라바울 속요'를 즐겨 불렀다고 함. 온갖 도박을 위한 시설들도 다 마련되어 있었고 후지모토 겐지가 김정일이랑 카드놀이를 해 돈을 따간적도 있었다고 증언할 정도였음.



(후지모토 겐지 인터뷰)


그리고 연회장에는 간이 침대들이 있는 별도의 침실이 따로 있었는데 이는 간부들과 기쁨조들 사이에서 난교파티를 시키기 위한 장소였음. 그래서 간부들과 그의 자제들은 온갖 난잡한 행위들을 일삼기 시작했음



김정일이 "내가 오늘 그만 마시고 들어갈테니 (당신들은) 아가씨들을 정복해라." 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엉망진창 난장판이 벌여졌다.

-고영환의 <평양 25시> 중-


어느 정도였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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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우 북한군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 1995년 사망)


당시 북한의 여배우였던 김옥희를 자기가 '따먹었다'고 자랑하고 다니고 예술단원들을 임신시키기까지 했을 정도였음.


리명재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리용호 외무상의 아버지)


계속 기쁨조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난잡하게 생활하자 참다 못한 아내가 김일성에게 신소를 올렸는데 그 신소를 중간에서 김정일이 가로채는 바람에 문제가 커짐. 그러자 리명재가 권총으로 자기 아내를 죽이고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김정일은 그를 총애하며 기쁨조를 아내로 삼게 해줬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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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


이 인간이 제일 난잡하기 그지 없는 인간 중 하나였는데 외국의 무용수들도 초대해 흑인 나체쇼를 즐기고 또 기쁨조들에게 거액의 돈과 틀니를 주는 대가로 이빨을 전부 뽑게 해 펠라치오를 즐겼다고 함. 이 인간은 결국 너무 난잡하게 군게 찍혀서 결국 혁명화 교육까지 갔다와야 했을 정도였음.


참고로 이 인간의 형인 최룡택도 마찬가지로 난잡한 인간이었고 음주운전도 서슴치 않아 전용 벤츠를 꼬라박해서 박살낸 적도 있었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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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이 인간도 사생아들을 여럿 낳을 정도로 난잡하기 그지 없었던 인물. 1979년에는 자기가 독단적으로 기쁨조 파티를 만들었던게 걸려서 김정일에게 혼나고 제강소로 추방갔다온 적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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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이 인간 아들이 사석에서 지 친구들을 불러 기쁨조를 데리고 나체초밥 파티를 벌인 적이 있어서 김영남이 처신 겸 자기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반병신이 되도록 가죽벨트로 뒤지게 팼다고 함. 그 결과 김정일이 김영남 아들은 용서해주고 나머지 친구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 죽였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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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연회장중 하나였던 8번 연회장.(파란색 네모칸 안) 로동당 본부 바로 옆에 붙어있다.)



이렇게 광란의 파티가 끝나면 증거인멸을 위해 파티 도중에 사용되었던 모든 물품들이 밤중에 비밀리에 소각되었다고 함. 그리고 파티에서 물러나는 간부들 중에서 김정일에게 이쁨받은 간부에겐 온갖 사치품 선물과 정치적 승진이 보장되었음. 즉 김정일의 파티는 단순히 향락을 넘어서 본인의 권력 획득을 위한 수단이었음. 그래서 점차 모든 간부들이 자신의 향락과 제물을 위해 김정일을 따르게 되었음. 결국 1980년대 중후반이 되면 이미 김일성의 권력은 사실상 유명무실이 되고 김정일이 사실상의 최고지도자의 반열에 오른 뒤였음.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 것은 김정일을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봤던 후지모토 겐지(김정일 전속 요리사), 고영환(북한 외교관, 김부자 통역 출신), 이한영(김정일 처조카), 황장엽의 교차검증된 증언이라 그 누구보다도 신뢰도가 넘쳐남.





출처: 군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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