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해외를 좋아하는 이유 0
대부분 윤재앙이 내리 9수만 한 줄 아는데요, 아는 분은 아실 겁니다. 돼지는 3수인가 4수쯤 하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애비에 의해 윤기중 일본 모교 히토츠바시로 보내집니다. 인맥으로 조교 자린가 알아봐서 보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일본인이 마지막 남은 만주군이 죽었다고 슬퍼한 진성 친일 다카기 마사오의 딸 503도 넘지 못 한 선을 마구 넘는 돼지를 보면, 윤기중의 밥상머리 친일 교육도 있었겠지만 뭔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고 그 중 하나가 윤두창 인생 유일하게 자유를 느꼈던 히토츠바시 체류 시절이라 봅니다.
처음으로 부모의 감시를 벗어나 도쿄 골목을 쏘다니며 자유를 느꼈겠죠. 즉,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윤재앙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일 확률이 상당히 큽니다.
굥의 성장 시절 일화나 고무호스 얘기를 들으면 두창이에겐 성인으로 자라는 데 필수적인 자기 인생에 대한 자율권이 없습니다. 극도로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을 거라 추측되는 - 고무호스로 맞았을 때가 이미 성인이 된 대학생 때입니다 - 양육 환경 아래서 남들 어른이 되는 20~30대에 얘는 되려 퇴행을 하죠.
고시원(골방), 당구장(또다른 골방), 검찰 취조실(음침한 골방), 밤마다 떠돌았다는 업소들(음습한 골방).. 그 결과 당선 직후 문통이 굥을 청와대로 불렀을 때 두창이는 산수유꽃을 못 알아듣죠. 얘 인생은 그냥 골방 인생인 거에요. Feat. 알콜..
돼지가 예전에 해외 순방을 가면 머리가 안 아프다고 했죠. 아마 히토츠바시 시절 영향도 있을 겁니다. 일이야 국내에서도 어차피 안 하니까요. 취임 일 년 뒤 민주당 의원인가가 어디서 질의할 때 그러더군요. 대통령 일정이 왜 말년 병장 같냐며..
다시 일본 얘기로 돌아오면.. 굥에게 일본은 자기 애비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자유의 상징이기도 하고, 학술원을 통해 윤기중 통장에 매달 꽂힌 180만원은 돼지의 9수 밑천이기도 했겠죠. 일본이 푼돈 들여 키운 친일파는 결국 이런 꼬라지가 됩니다.
소중한 국기라는 의식 자체가 없네요. 것도 삼일절에..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임기를 마치면 다시 일본으로 망명갔으면 좋겠네요. 젊은 시절 느꼈던 자유도 만끽하고, 정신적 고향 - 안해욱 회장님 주장이 맞다면 신체적 고향이기도 한 - 후쿠시마도 먹어서 응원할 겸. ㅎ
끝으로 친일파 윤호중, 뉴라이트 수뇌 윤기중, 그리고 윤재앙 이렇게 삼대가 공부한 히토츠바시의 창립자는 모리 아리노리란 자로, 조선인은 열등하니 마소처럼 다뤄야 한다는 망언을 남긴 인간입니다.
후계자가 잘 실천하고 있군요.
참고 1
일본 체류 제보자는 고위 공직자로, 대선 전 굥돼지와 얘기하다 일본 체류 얘기만 무아지경으로 하는 두창이에 너무 놀라서 뉴탐사 강진구 기자에게 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 2
본문에 언급한 업소는 물론 대선 전 SBS에 나와 본인이 말한 김치찌개 업소를 말하는 겁니다.
참고 3
흥미로운 건 이 정권 서열 1~3 위까지가 다 아동학대 의혹이나 사실이 있죠. 정치는 커녕 치료가 시급한 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