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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입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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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보이
24/02/25 11:37:01 24/02/25 11:37:01 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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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이상한 시비에 휘말린 후에 개인정보까지 들추며 들이대는 이상한 사람들을 몇번 겪다보니 글을쓰는것도 좀 꺼려집니다.

 

주말 48시간동안 당직을 맡아 혼자 병원을 지키고 있으면서 주절거리는 글을 하나 남기고 싶어 써봅니다.

종합병원에 근무중인 신경외과 전문의입니다. 전문분야는 뇌혈관질환이며 뇌경색이나 뇌출혈 환자에 대한 시술과 수술을 맡고 있습니다. 

 

수련병원이라서 전공의도 근무중이나 1년차부터 4년차까지 꽉 찬건 아닙니다. 

평일 저녁에는 과장들끼리 돌아가며 당직근무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주일 전공의 80시간의 근무 스케쥴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당직날엔 직접 응급실 내려가서 처음부터 환자를 살피고 입원, 필요하면 수술하고 병동이나 중환자실 콜도 받아서 해결해합니다. 

다음날 외래진료, 정규검사나 수술이 있는걸 감안하여 최대한 융통성있게 스케쥴을 짜볼려고 하지만 모두가 만족할만한 스케쥴로 맞출수 없기에 가끔 수술환자때문에, 또는 병동내 안좋은 환자가 있으면 밤새고 외래 진료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벽에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오면 수술이 무서운게 아니라 다음날 정규 검사나 외래 볼 일이 걱정됩니다.


게다가 제 당직날이 아닌, 다른 과장님이 당직을 하더라도 시술이 필요한 뇌경색이나 뇌출혈 환자가 오면 출동합니다.

한달에 딱 절반입니다.  시술이 가능한 의사가 저를 포함해서 2명뿐이라서요. 당직은 여러명의 과장 + 주말엔 전공의가 나눠서 가능하나 시술이 필요한 환자는 2명의 전문의가 1년 365일 24시간내내 절반씩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몇 년전 병원노조에서 장기간 파업을 할 때도 하던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예약된 검사를 하고 외래진료를 보고 응급수술과 시술을 했는데 지역내 언론에서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진료에 공백이 우려되고 어쩌고 하는 기사가 나오더라도 저희과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면 응급환자니까, 여기서 튕겨내면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깐요.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병원에 전공의는 없지만 평소에도 제가 하는 일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시술도 그동안 혼자 해왔기에 무리없이 하고 있습니다. 

평상시 전공의 의존도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하고 일해왔는데 막상 일주일째 전공의 없이 하고 있으니 힘들긴 합니다. 

같이 일을 하고 있는 PA, 전담간호사들도 내색은 안하지만 저만큼이나 입에서 단내가 나는 상황일것 같네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신 분들도 있을것 같습니다

누가 칼들고 협박했냐고, 그래도 돈 많이 받지 않냐고, 의사라면 그렇게 일해야지 않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제 근무여건이나 당직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당장은 하고 있지만 이게 누군가는 외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국에 4천명 가까이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지만, 그중 뇌혈관 환자를 전문으로 맡아서 하는 사람은 500명이 채 안됩니다.

뇌종양 환자를 치료하는 선생님들도 다르지 않을것 같습니다. 대부분 척추, 통증쪽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그 이유에는 물론 페이가 영향이 없는건 아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저도 스트레스 받지 않는 수준의 진료를 하면서 돈도 적당히 받을수 있는, 그러면서도 저녁이 있는 삶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빅5 아산병원에서도 수술할 사람이 없어서 직원이 죽었습니다. 뇌혈관분야를 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국민들 대다수가 정말로 원하는거라면 의대증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근무환경도 2명이 번갈아서 대기하고 출근하는 날이 1달에 15일이 아닌, 4-5명이 1주일씩 나눠 맡아 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2천명의 의대증원이 되더라도 같은 분야의 전문가 동료들이 생각보다 많이 늘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대한민국 의사들 모두가 환자를 외면하고 사적서를 내고 파업을 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대학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스텝들도 저와 비슷한 상황일것 같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 답답한 마음도 있고 버티고 있는 상황에 누가 먼저 지칠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또 누군가는 정부의 정확한 통계도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식, 겁주기식 발표를 보며 참담하지만 뭐라도 한마디 하는게 결국엔 비아냥거림으로 돌아오는게 싫어서 외면하고 있을지도요. 지금의 정책이 정말 그동안 오랫동안 생각해오면서 충분한 상의를 거쳐서 한건지, 정말 무슨 의도가 있는 것처럼 밀어붙이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현재의 사태를 보면서 참 답답합니다. 병x 정부와 병x 의협의 치킨게임을 보는 것도요.

두 마리 겁많은 개가 창살을 사이에 두고 신나게 짖어대는것 같습니다. 

의협의 목소리가 전체 14만명 의사 입장을 대변하는건 아닙니다. 모든 의사가 같은 뜻을 가진 원팀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개원의 입장이 틀리고,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봉직의, 그 봉직의를 고용하는 병원장, 대학병원 교수, 수련병원 인턴 및 전공의, 그리고 아직은 면허가 없지만 현재의 사태에 같이 기름을 붓고 있는 의대생까지 저마다의 입장은 틀립니다.  전문과목에 따라서도 입장은 틀리겠죠. 

 

의료수가 문제, OECD 대비 우리나라 의사 숫자가 현재는 미래에는 어떻고 진료접근성은 어떻고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의 사태를 밥그릇 싸움으로 단정해버리고, 여러 커뮤니티나 뉴스 댓글에 마치 눈앞에 있으면 죽일듯이 모든 의사를 까대는 것을 보면 참담한 생각도 들고 회의감도 많이 듭니다. 그중에는 말도 안되는 기사를 쓰고 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한편으로는 어제오늘 입원시키고 수술한 제 환자 및 보호자들이나 평소 진료시에 만나는 환자들이 적어도 제 눈앞에서는 이런 말은 하지 않을 정도의 진료를 할 수 있는 과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도 마음 한편에는 이런 적개심이 있겠구나 싶을때면 앞으로는 어떤 의사로 남아야할까 싶은 고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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