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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사(LG전자) 사장의 50년 전 자필 이력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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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24/02/13 20:07:02 24/02/13 20:07:02 1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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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경로를 통해 우연히 입수하게 된 금성사(현 LG전자) 고 박승찬 사장님의 자필 이력서입니다.

 

고 박승찬 사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유엔한국부흥단(UNKRA) 식량농업국 전문보좌관으로 출발하여 


1954년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具仁會) 회장의 권유로 럭키산업 상무에 취임하며 스타 전문 경영인 명성을 쌓아올렸는데요,


1967년에 훗날 LG그룹의 2대 회장이 되는 구자경 럭키화학 전무와 금성사의 박승찬 전무가 크게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중남미로 수출한 금성사의 라디오 케이스에서 모조리 불량이 발생해 수입처로부터 불만이 쇄도하고 보상을 요구받은 것입니다.


럭키화학 플라스틱 담당 구자경 전무는 "도대체 물건을 어떻게 조립했고, 어디에 팔았기에 이런 문제가 터졌냐"며 흥분했고


금성사 라디오 담당 박승찬 전무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만든 럭키화학이 제대로 충격시험을 하지 않았다"고 맞받아쳤습니다.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具仁會) LG그룹 회장은 문책보다는 원인을 먼저 규명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대안을 고심하다가 


1968년, 구자경 전무와 박승찬 전무 두 사람을 상대방의 회사에 부사장으로 교차 승진시켰고, 그 후 중남미로 급파된 


박승찬 럭키 부사장은 현지에 도착해서야 어느 쪽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지 바이어가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 밀반입을 시도하려고 라디오를 실은 박스를 헬기를 통해 산림에 공중낙하 시켰던 것입니다.


사람을 아끼고 서로 화합한다는 '인화(人和)' 정신을 강조한 LG그룹의 전설적인 일화가 만들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1971년 금성사 사장으로 취임한 박승찬 사장은 1979년 6월 6일, 부인인 최은유씨와 딸 두명(박은희, 박소희), 


손녀인 박지혜양과 함께 경기도 신갈의 주말농장에 다녀오는 고속도로에서 부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이 각급 임원을 거쳐 CEO로 일생을 마친 금성사는 비록 오늘의 LG전자로 변모했지만, 유도무기 및 레이더 생산 등


(금성정밀->LG이노텍 및 LIG넥스원) 대한민국 방위산업 발전사의 중요한 대목에 고인의 채취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고 박승찬 사장은 한국의 전자산업이 금성사-대한전선-삼성전자 등 가전 3사 시대로 개편되어 눈부시게 발전하며 


경쟁하고 있을 때, 전자공업협동조합, 전자공업진흥회 회장 등 업계 대표로 한국전자전시회(KES)를 주최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박승찬 사장을 혈연 관계(능성구씨 등 범 LG일가)가 없는 한국 최초의 전문 경영인이라고 칭송합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한 LG그룹을 보면서 고 박승찬 금성사 사장의 공적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기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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