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핀란드 대선 최종결과.jpg 0
2024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2차 투표(12년 대비 투표율: 67.58%[+1.60])
알렉산데르 스투브(국민연합당, 자유보수주의): 51.62%(-10.97)
페카 하비스토(녹색연합, 녹색자유주의): 48.38%(+10.97)
알렉산데르 스투브 3.24%p차로 대통령 당선 확정
(VAS: 좌파동맹, VIHR: 녹색연합, SDP: 사회민주당, MUUT: 기타 정당, KESK: 중앙당, LIIK: 지금 행동하자, KD: 기독교민주당, KOK: 국민연합당, PS: 핀란드인당)
2024년 핀란드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최종결과(투표율: 71.53%%[+4.77])
알렉산데르 스투브(국민연합당, 자유보수주의): 27.21%(-35.43)
페카 하비스토(녹색연합, 녹색자유주의): 25.80%(+13.40)
유시 할라-아호(핀란드인당, 우익대중주의): 18.99%(+12.06)
올리 렌(중앙당, 북유럽 농본주의): 15.32%(+11.23)
리 안데르손(좌파동맹, 민주사회주의): 4.88%(+1.87)
유타 우르필라이넨(사회민주당, 사회민주주의): 4.34%(+1.09)
사리 에사야(기독교민주당, 기독교민주주의): 1.48%(+1.48)
미카 알톨라(무소속, 경제-진보, 사회-중도): 1.46%(+1.46)
얄리스 하르키모(지금 행동하자, 직접민주주의): 0.52%(+0.52)
알렉산데르 스투브-페카 하비스토 결선 진출
지난 이야기:
https://gksejrdn7.tistory.com/91
https://gksejrdn7.tistory.com/159
https://blog.naver.com/gksejrdn7/223337784564
https://blog.naver.com/gksejrdn7/223063425992
https://blog.naver.com/gksejrdn7/222630425907
지난 2019년 4월 14일 치러진 핀란드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무려 20년만에 1위에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과반의석에는 턱없이 모자랐기에 중앙당, 녹색연합, 좌파동맹, 스웨덴인민당과 범좌파연정을 결성하였습니다.
이후 안티 린네 사민당 대표가 우체국 파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총리직에서 사임하면서 뽑힌 산나 마린 신임 총리와 연정정당 대표 겸 주요 장관(경제, 내무, 교육, 법무)들이 전부 여성인 것이 잠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산나 마린 총리는 세계 최연소 여성 정부 수반 기록을 갱신하며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성향의 핀란드인당이 정부정책에 대한 실망감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지지율 1위를 차지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사태 초반 타 국가들처럼 정부를 일단 믿고 신임을 부여하는 추세가 강해지며 사회민주당이 거의 1년만에 지지율 1위를 탈환하게 됐습니다.
4월 예정된 지방선거 직전인 21년 3월 초까지는 1위를 잘 유지해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수도 헬싱키를 중심로 재확산되면서 선거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으며, 사회민주당의 지지율도 방역 책임론에 의해 덩달아 위축되면서 국민연합당과 핀란드인당이 함께 상위권을 형성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6월 13일 치러진 핀란드 전국 지방선거 결과, 제1야당인 핀란드인당이 17년 득표율 절반 이상의 상승세를 보였지만 여론조사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여 득표 1위엔 실패했으며, 제2야당인 국민연합당이 정부에 실망한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여론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하며 1위를 유지했습니다.
반면 제1여당인 사회민주당은 여론조사만큼 부진하였으며, 스웨덴계 핀란드인들의 고정 지지층이 있는 스웨덴인민당을 제외한 범좌파연정 구성 정당들 모두가 득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여기엔 중농주의 노선으로 시골 농민 기반이 탄탄하여 득표율에 비해 의석 크기가 매우 큰 중앙당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헬싱키 제1당 및 시장 배출을 기대했던 녹색연합은 크게 부진하며 오히려 10%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위와 같은 결과에는 코로나로 인한 예상 투표율 하락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핀란드 중앙정부의 지자체 사회, 보건 서비스 개혁, 세금제도, 코로나 사태 출구 전략에 의한 사회경제적 영향 등이 주요 쟁점이 되었으며, 19년 총선과 23년 차기 총선 사이에 위치하여 산나 마린 정부의 중간평가 역할을 하게 된 셈입니다.
핀란드는 특이하게도 국회의원의 지방의원 겸직이 허용되어 산나 마린 총리 본인이 실거주지 시의원 선거에 직접 출마하는 등, 80%가량의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직도 겸직하는 상황입니다.
한편 옆 나라인 스웨덴에서는 친 시장적 조치인 주택 임대료 규제 완화 문제로 좌파당이 사민당-녹색당+중앙당+자유당 연정 지원을 취소하면서, 극우 민주당과 중도우파 온건당이 상정한 스테판 뢰벤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되어 9월 말에 조기 총선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으나 무산됐습니다.
게다가 노르웨이에서는 9월 13일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여러 선거가 진행되며 정치적 격변이 계속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21년 9월 노르웨이 총선에서 중도좌파연합이 승리하고 그 이후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도 사민당 주도의 신호등 연정(사민+녹색+자민)이 수립된 데다, 스웨덴 역시 조기 총선 위기를 넘기고 사민당 내 대표 및 총리 교체 효과로 지지율이 반등함에 따라 마침내 북유럽 사민주의 세력의 부흥기와 여성 총리(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일시적으로 노르웨이 우파 총리)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1년 12월, 외무장관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바로 그날에 산나 마린 총리가 나이트 클럽을 방문하여 유흥을 즐기며 스스로 만든 방역규칙을 철저히 무시한 사실이 폭로되고 관계자로부터 격리 필요성이 없단 말을 들었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핀란드인 2/3 이상이 해당 이슈에 대해 부정평가를 하는 등 격한 비판 세례가 쏟아졌습니다.
그 와중에 핀란드에서도 오랜 비동맹 외교 역사를 뒤로하고 내각과 대통령이 나토 가입을 검토하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등을 향한 군사적 압박에 의해 유럽, 더 나아가 미국과의 전면적인 군사협력을 고려하였으나, 러시아와 국내 정치권의 거센 반발과 가입 효율성 논란 때문에 산나 마린 정부는 임기 내 가입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며 NATO 가입 논란을 진화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산나 마린 정부의 좌충우돌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진 가운데 주요 야당이던 국민연합당과 핀란드인당 모두 수혜를 입었으나, 총리 논란에 실망한 대다수의 중도층은 국민연합당으로 이동하여 1위 탈환에 기여했으며 핀란드인당은 강경 우파 결집효과에 그치면서 21년 지방선거 이래 계속되던 하락세가 멈추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그런 가운데 22년 1월 23일엔 핀란드 지방선거가 열렸습니다. 해당 지방선거는 21년 치러진 기초자치단체의회 선거와는 달리 산나 마린 사민당 정부의 사회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통과된 복지법안에 근거하여, 건강보험 등을 전담하는 새로이 생긴 복지위원회를 운영할 총 21개 지역(헬싱키, 올란드 제도 제외)의 1379명에 달하는 신규 위원들을 뽑는 선거였습니다.
그리고 선거 결과, 핀란드인당은 이번에도 여론조사에 비해 크게 부진하면서 실질적 제1야당의 위치를 항상성을 유지한 국민연합당에게 확고히 넘겨주고 말았으며, 반대로 집권 좌파 연정의 핵심인 사회민주당과 중앙당은 21년 지방선거에 비해 약진, 그리고 대선전 함에 따라 이번 선거의 최고 수혜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또다른 연정 구성체인 녹색연합은 보합세를 보인 좌파동맹, 스웨덴인민당과는 달리 여론조사 대로 21년 대비 득표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이번 선거 최대 패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반-백신 성향의 강경 우파정당 ‘힘은 인민에게’가 1.3%를 득표하는 등, 코로나 방역 정책에 대한 반감이 반-백신 신생 정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는 경향이 오스트리아에 이어 여기서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사태가 지방선거 직후 터져버리면서, 나토 가입 논쟁 역시 급격한 전환을 맞게 됐습니다. 산나 마린 총리가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과 함께 나토 가입을 공식화한 것에 이어, 23년 3월에 여전한 비동맹 중립 외교 노선을 고수하는 좌파동맹 정도를 제외한 원내 모든 정당들이 나토 가입에 찬성표를 던진 것입니다.
스웨덴과의 동시가입은 쿠르드 분리주의 단체 문제로 스웨덴과 갈등을 빚던 터키(튀르키예)의 격렬한 반발과 헝가리의 미적지근한 태도로 무산됐으나, 핀란드의 단독 가입은 대 러시아 봉쇄망 확대를 원하던 나토 지도부와 더 많은 지원을 내심 바라던 에르도안-오르반 간에 접점을 찾으며 만장일치 속에 통과되면서, 구 동구권 선거에서의 친러파 부진과 함께 서방의 포위 진격을 외치던 푸틴 스스로 자기실현적 예언을 성취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스웨덴과 달리 해당 안보동맹 강화는 사민당과 산나 마린에게 생각보다 큰 도움(지속적인 1위 탈환 실패)이 되지 못했는데, 여기엔 산나 마린 총리의 계속되는 광란의 파티 게이트(22년 8월)와 그로 인한 마약 투약 논란 등의 개인 이슈로 인한 반감에 더해서 정치의 구조적 차이점이 작용한 바 있습니다.
스웨덴은 좌우 블록 정치가 강화되어 반EU 우익대중주의자 민주당의 우파연합 내 실세등극과 입김이 온건당의 친-나토 재정보수주의 속 안정적 국내외 정치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중도층이 사민당의 전향적이고 주도적인 외교안보 노선에 넘어간 부분이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핀란드는 블록 정치가 아닌 제1당이 총리 우선권을 가지는 암묵적 합의 속에서 확고한 다당제 분권(각 당대표들 핵심 요직 차지) 연정이 이루어지기에 5당 대연정으로 인해 산나 마린과 사민당의 온전한 공으로 비춰지지 않은데다, 온건당과 비슷한 포지션이나 더 친EU인 국민연합당의 총리 확보 시에도 우익 핀란드인당의 연정 영향력이 제약되고 사민당의 대연정 구성으로도 견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중도층의 집권당 집결 필요성을 낮춘 점이 컸습니다.
게다가 스웨덴 역시 막달레나 안데르손 전 총리와 사민당의 놀라운 인기에도 불구하고 연립 정당(좌파당, 중앙당, 녹색당)의 부진으로 우파가 간발의 차로 정권교체에 성공했으나 기후변화와 재정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저조한 인기를 누리면서, 온건-민주 둘 모두를 제압하는 압도적 지지율의 사민당에게 정국 주도권을 내주고 있는 복잡한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덴마크는 우향우한 사민당의 주도로 사민-자유-온건의 중도 좌우대연정이 성사되었으나 오히려 좌우로 강경파들(녹색좌파당, 자유동맹)에게 난타당하며 정부 지지율이 40% 아래로 추락하는 결과만을 초래한 만큼, 핀란드에서도 국민연합당이 주장하는 국민연합당-사민당-핀란드인당 대연정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비슷한 시나리오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위와 같은 분위기 속에 부채증가(GDP 대비 63%->74%)에 대한 불만과 10%에 육박하는 극심한 인플레에도 여전히 64%에 달하는 산나 마린 개인에 대한 높은 선호도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권교체 시에도 국민연합당의 재정보수주의 노선(60억 유로 적자 감축 주장 논란)과 사민당의 증세 논란 정도를 제외하면 다당 연정을 통한 대다수 정책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 속에서 사민당과 연립 정당들의 온전한 인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양대 야권 정당(국민연합당, 핀란드인당)이 각자의 사유(친EU-나토-이민 중도우파 재정보수적 반정부 대안, 반-이민 우익대중주의적 반정부 대안)로 힘을 받아 연정 과반까지 위태로워지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중앙당이 농민-환경정책 이슈에서 계속 갈등을 빚던 녹색연합이 포함되는 범좌파연정 재구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제1당 미확보시의 산나 마린 개인의 인기를 바탕으로 한 총리 잔류 가능성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그와 반대로 핀란드인당은 사민-좌파-녹색의 절대 반대를 제외하면 나머지 정당들로부터 애매한 뉘앙스 속에 19년 총선의 고립을 탈피하며 연정 진입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1년 지방선거부터 계속된 국민연합당 접전 1위 행진이 23년 4월 2일 치러진 총선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핀란드인당과 사민당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며 연정 구성권을 확보했습니다.
집권 범좌파연정은 2007년 이래 최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핀란드인당에게 간발의 차로 패한 사민당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하락세를 보인데다, 일찌감치 연정 재구성에 회의감을 보인 유탄(1917년 이래 최저 득표율)을 맞은 중앙당을 제외할 시 과반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산나 마린 총리는 미련을 버리고 빠른 패배 승복을 선택했습니다.
총선 직후 페테리 오르포 국민연합당 대표가 선택할 연정 옵션으로 국민연합당-사민당-스웨덴인당-녹색연합+a 중도연정 혹은 국민연합당-핀란드인당-중앙당의 범우파연정이 거론되는 상황이며, 양 선택지 모두 나름의 장단점(전자: 핀란드인 절대다수 여론 반영이나 우익대중주의 야권 돌풍 여지를 남김-구성에 따라선 덴마크 시나리오 가능성도, 후자: 반정부 우파 지지층과 반이민 여론을 만족시키나 스웨덴식 리스크 존재)이 존재하는 만큼 협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나길 여지가 있었습니다.
다만 아무리 길어져도 24년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와 대선 이전엔 절차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최악의 경우에도 이스라엘-불가리아식 무한 재총선 사태에 처할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그리고 23년 6월 중순, 국민연합당이 선호하던 친-원전 노선에 부응하는 유럽 최대 원전 가동(41년 만의 신규원전 4월 중순) 같은 주요 사안이 발생하는 와중에도 계속된 연정 협상 속에 노동/연금정책에서 접점을 찾은 스웨덴인민당과 기독교민주당이 핀란드인당에 맹렬한 거부감을 드러내던 중앙당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범우파연정안(국민연합당-핀란드인당-스웨덴인당-기독민주당)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때 독일어권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아이슬란드까지 북유럽 전체를 휩쓸었던 사민주의-진보 물결은 제1야당 사민당이 총리정당 녹색좌파운동 이상으로 잘나가는 아이슬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독일 신호등 연정의 인기 폭락과 친-원전 스웨덴 우파(중도우파-극우)의 집권, 노르웨이 노동당 정부의 극도로 저조한 인기, 덴마크 좌파연정 붕괴 및 중도 3당 연정(경제진보-사회보수 사민당을 필두로 강경 우파에서 중도화 된 전 자유당 총리가 이끄는 중도 온건당과 중도우파 자유당)과 함께 재차 위축되었습니다.
연정 협상이 마무리되자 호사가들의 시선은 24년 봄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와 그 전초전이 될 대통령 선거로 옮겨갔습니다. 본래 미국/유신체제 한국처럼 선거인단제로 선출되던 핀란드 대통령직은 26년간 초장기집권한 우르호 케코넨[중앙당] 등 냉전 시절의 권위주의 독재자화 논란으로 인해 마우노 코이비스토 차기 대통령(사민당 총리 출신) 하에서 점차 연임제한/완전 직선제/무소속(당선 직후 탈당 관례)화 된 88, 94, 12년 대선을 전후해서 내각 중심 이원정부제로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상당한 권한(외교안보인사권, 사면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선 전 외교안보 위기 속의 초당파 중도노선으로 압도적인 인기를 얻었음에도 개헌을 통한 3선 출마를 거부한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의 임기 종료로 인해, 디펜딩 챔피언 없이 치러지게 된 24년 대선의 가장 유력한 주자는 12, 18년 대선에서 니니스퇴와 연이어 맞붙어 2위에 그쳤던 페카 하비스토 전 외무장관(녹색연합 출신 무소속, 성소수자 환경운동가)이었습니다.
대항마들이 두드러지지 않던 23년 총선 전후까지만 해도 12년만의 대통령 직 탈환을 꿈꾸던 핀란드 진보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올리 렌 핀란드 은행 총재(중앙당)의 경쟁을 뿌리치고 압도적 1위를 구가하며 니니스퇴(06년 출마 낙선)처럼 낙선 후 당선이 유력했던 하비스토였으나, 녹색연합 10여년만의 최대 참패와 함께 국민연합당 중심 보수 정부의 출범으로 우파 진영 후보들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1위 지위를 서서히 잃어갔으며 알렉산데르 스투브 전 총리(14.6-15.5)와 결선 가상대결에서도 밀리는 신세에 처했습니다.
오르포 총리의 공공지출삭감/노동복지제약/쉬운 해고 정책에 대한 논쟁과 핀란드인당 출신 리카 푸라 부총리의 심각한 인종차별 발언 발굴 및 뒤늦은 사과, 역시 핀란드인당 출신의 빌헬름 준닐라 경제장관의 네오나치 조직과의 연계 발견으로 인한 1개월만